용산 개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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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에서는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태동부터 1차 사업의 무산, 그리고 재 출범까지의 기나긴 발자취를 소개하겠습니다.

 

개별적인 사건이나 항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가급적 생략한 채 중요한 사건 위주로만 전개할 예정이며, 상세한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개별 사건이나 항목에 대해서는 따로 올리겠습니다.

 

시작합니다 !! ^^

 

 

태동기

 

'01. 7.10 : 용산 지구단위계획 결정

'05. 1. 1 :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출범. 부채4.5조와 정비창 부지 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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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철도 정비창 부지에 '국제업무지구' 라는 이름이 붙은 사연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울역에서 용산역으로 이어지는 철로 주변에 수 십 곳의 '지구단위계획구역'이 지정되어 있었는데, 2001년에 이 구역들에 대한 '지구단위계획'이 수립 결정되었습니다.

 

그 '지구단위계획'의 최하단에 …

 

 

worldplan.png

 

 

이렇게 '국제업무지구'라는 명칭이 붙어 있습니다.

 

이 때에는 철도공사(이하 '코레일')가 출범하기 한참 전이라서 철도청이 소유하고 있던 국유재산이었으며, 이 국유재산에 대한 특별한 계획 등은 없을 때라, '정비창이전 등 여건성숙시 장기적인 계획으로 추진 필요' 하다는 단서조항을 달아서 높지 않은 용적률과 고도 등 간단한 개발항목들만을 첨부한 단순한 예정계획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는 철도청이 공사로 전환되는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2004.1.7일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설립되어 철도시설의 건설·관리 부분이 이관되었고, 2005.1.1일에는 철도영업 부분 등 철도청의 나머지 기능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 전환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철도청 소유의 정비창 부지 등이 코레일로 넘어 왔는데, 넘어 오지 말았어야 할 빚까지 넘겨받게 됩니다. 10조가 넘는 고속철 관련 부채 중, 운행 차량에 대한 명목으로 약 4.5조원의 부채를 떠 안게 된 것 입니다.

 

그리고 이 빚이,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개발을 촉발시키는 단초가 됩니다.

 

 

 

제1기 : 출항기 (2006.1 ~ 2007.12 ; 2년간)

 

'06. 1.   : 철도부채(약4.5조원) 해결위한 정부차원의 지원 필요성 제기(대통령 연두기자 회견)

'06. 8.   : 용산역세권 개발 포함, 철도경영 정상화 종합대책 수립(국토부)

'06. 9.26 :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발표

'06.12.20 :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자 공모(코레일)

'07. 3.28 :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자문(최고높이 620m, 5만평 개발유보)

'07. 4. 3 : 사업자 공모 취소(코레일)

'07. 7. 3 :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 발표(국제업무지구 포함)

'07. 8.16 :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및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자문(용적률608%, 서부이촌동과 통합개발 조건)

'07. 8.17 : 서울시 - 철도공사간 공동 합의문(통합개발) 발표

'07. 8.30 : 이주대책기준일 지정공고(서울시)

'07.11. 2 : 삼성물산-국민연금 컨소시엄 사업자 선정(토지8조원, 개발사업비28조원 제시)

'07.12.18 :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주식회사(주)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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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출범 1년 후인 2006년 년초, 대통령의 연두 기자 회견에서 철도공사의 부채 문제가 언급이 됩니다. 대통령의 연두 기자 회견에 등장할 만큼 사안이 심각했던 모양입니다.

 

이어 같은 해 8월, 철도경영 정상화 대책이 발표되는데 여기에서 용산 역세권 개발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후, 코레일 소유의 부지들에 대한 개발 논의들이 한 동안 뉴스에 오르내리더니, 12월 20일에는 드디어,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자 공모' 를 발표하며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공식적인 첫 행보는 곧바로 암초를 만나게 됩니다.

 

인허가권자인 서울시가 2006.9.26일에 발표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내세워, 서부 이촌동과의 통합개발, 정비창부지 중 5만평에 대한 개발 유보, 강변북로 지하화 등을 요구해 오면서 제동을 걸어온 겁니다.

 

급기야 3월 21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공모 접수도 받아보지 못하고 4월 3일에는 공모를 취소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용산역세권 개발'은 첫 항해에서 만난 암초를 넘지 못하고 표류하게 됩니다.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저 간의 사정을 모르는 분들은, 서울시가 9월 26일에 먼저 발표했는데 코레일이 뒤늦게 12월에서야 사업자공모를 발표한 것이 잘못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그 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2006년 6월 1일에 서울시장으로 취임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2개월여만인 8월 23일에 '민선4기 서울시비전' 이라는 것을 내어 놓는데, 그 발표된 내용 중의 하나로 한강 르네상스가 처음 등장합니다. 이어 9월 26일에는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공식 발표. 

 

이 때 발표된 내용도, 이 후의 발표와 홍보들도 '한강 르네상스'는 오롯이 '환경'에만 초점을 맞춘 계획이었습니다.

 

도시개발과 관련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구상은 후보시절 공약했던 '50곳의 뉴타운'이 있었고, 2006년 하반기 당시의 수도권 부동산시장은 그렇지 않아도 겉잡을 수 없이 타오르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골치거리가 되고 있던 시점이라, 굳이 거창한 개발계획을 새롭게 발표하여 큰 파문을 일으켜서 여론의 질타를 받을 이유가 없었지요.

 

이명박 대선 주자의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를 지지하기 위한 연계 계획이면서, 환경변호사로 지칭되었던 자신의 환경 이미지를 부각시킴으로써 개발 이미지가 강력했던 이명박 전 시장과의 차별화까지 시도하려는 차원의 환경 프로젝트가 '한강 르네상스'의 정체였던 것 입니다. 적어도 2007년 1월까지는...

 

당시 서울시의 제동에 대하여 코레일 사장이 "서울시가 사업자 공모 이후에 뒤늦게 제동을 건 이유는 그 전까지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에 대한 밑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기 때문" 이라고 불평을 토로하였는데, 이는 완벽한 진실입니다.

 

2007년 1월에만 해도 '한강 르네상스' 에 대한 서울시의 홍보자료 어디에도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물론 여타 도시계획과의 연계개발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 때에 한강변에 인접한 기존의 한남뉴타운이나 흑석뉴타운 등 과의 연계가 언급되고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2007년 7월 3일에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 이 전격 발표됩니다.

 

그리고 이 마스터플랜에서는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대한 거창한 계획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용산국제업무지구_000.jpg

 

 

10여년 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이 조감도가 그 때 탄생하였습니다. 우리네 나이 계산법으로 벌써 14살 이네요. ^^

 

현재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억하고 또 기대하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에 대한 환상은 모두 그 때에 시작된 계획입니다.

 

오세훈 (전)서울시장의 '전략정비구역'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 '전략정비구역'의 탄생 또한 바로, 이 때의 한강르네상스 마스터플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이 마스터플랜은 2006년 9월, 최초 발표 당시의 '한강 르네상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방대한 도시계획들과 연계되어 있는 명실상부한 종합개발계획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불과 1월 초 까지만 하여도 갈대숲이 조화를 이루는 등의 아름답고 소박했던 수변 계획에 불과했으며, 한강 주변의 기존 뉴타운들과의 연계를 통하여 수변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 불과 6개월만에 이렇듯 거창한 도시계획으로 탈바꿈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단순한 몇가지 요인에 의한 것은 아니며 수많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다음과 같은 정치인들의 사적인 욕구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추측만 해볼 따름입니다.

 

• 점차 논란이 커지고 있던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에 대한 확실한 지원.

• 오세훈 서울시장만의 독창적인 개발 프로젝트.

 

 

2007년 1월, 당시에는 토지거래허가, 개발행위제한 등 각종 규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광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도권 전역이 부동산 투기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서울 지역의 '4차 뉴타운 후보지'들은 순식간에 투기의 각축장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독창적인 개발 프로젝트가 없다는 약점이 있는데, '뉴타운 50곳' 공약에 따른 이 역풍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2007년 1월 17일,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4차 뉴타운의 신규 지정에 대한 무기한 보류를 선언합니다.

 

물론, 이미 그 선언 전에 대안에 대한 결심이 서 있었겠지요.

 

'한강 르네상스' 에 도시개발계획을 접목하여 계획을 확대한다고 하는…

 

그 결과가 7월에 발표된 '한강 르네상스'의 마스터플랜이고, 이러한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라, 그 과정 중에 있던 코레일의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에 제동을 걸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시간 순으로 재구성해 보면...

 

• 2006년말 극심했던 부동산투자 열기가 4차뉴타운 후보지로 이동하기 시작

4차 뉴타운에 대한 정치적 부담증가

• 2006년말~2007년 1월 초, 한강 르네상스 홍보자료 등 발표

4차 뉴타운 대신 한강르네상스에 신규 도시개발계획 추가하여 연계하는 구상 결정

• 2007년 1월 7일, 4차 뉴타운 신규 지정 무기한 보류 선언

•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 제작 착수(2006년 예고)

•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의 메인 프로젝트인 국제업무지구 구상을 위해 코레일 압박

• 4월 3일, 코레일 사업자공모 포기

• 7월 3일, 용산 국제업무지구를 포함한 '한강르네상스 마스터플랜' 전격 발표

• 8월 17일, 서울시와 코레일 통합개발 발표

 

 

이러한 순서로 진행 되었으며 위 나열항목 중 다른 색으로 표시한 두 가지는 자료를 통한 확인이 불가능한 추측이기는 한데, 한강르네상스에 도시계획을 포함하는 구상은, 결정의 시기만이 위에 언급한 순서일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며 구상자체는 이미 11월 이전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미 이 때부터 한강 수변 경관보호라는 미심쩍은 이유로 관련 지역의 개발관련 심의들을 보류해서 원성을 사는 일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추측이 됩니다.

 

 

 

삼성물산의 참여와 드림허브 설립

 

코레일이 서울시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되기는 하였으나 덕분에 훨씬 더 화려하고 거창해진 사업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8월 30일, 통합개발 발표 후 2주도 채 지나지 않아서 사업자 공모를 공고하였으며 10월 30일 접수를 받아 11월 2일, 3일만에 사업자(우선협상 대상자)를 발표 합니다.

 

사업자로 선정된 삼성물산-국민연금 컨소시엄은 삼성물산을 포함한 17개 건설사와 국민연금을 포함한 5개 재무투자자 외 롯데관광개발 등 전략적투자자를 합져 25개의 법인으로 구성된 초대형 컨소시엄이었습니다.

 

이 때 공개된 삼성물산-국민연금 컨소시엄의 제안 내용 중, 코레일이 소유한 정비창 부지 356,492㎡(=107,838평)를 8조원(평당7,418만원)에 매입하기로 하는 것과 총사업비 28조원이라는 규모는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한 것 이었지요.

 

12월 13일 최종 사업자가 그대로 결정되고 그 직 후, 드림허브(주)와 용산역세권개발(주)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개발행보를 시작하게 됩니다.

 

첫 항해에서 서울시의 제동이라는 암초를 만나 잠시 표류하다 통합개발로 전환하여 다시 항해를 재개하면서 부터는, 매우 순탄하게 빠른 속도를 보이며 이렇듯 거대한 모습으로 변모하여 세인들의 뇌리 속에 '용산 국제업무지구'라는 환상을 굳게 심어 주었고, 이 후 수년 동안 많은 기대감을 모으며 항해를 이어가게 됩니다.

 

 

 

제2기 : 고난기 (2008.1 ~ 2010.10 ; 약 3년간)

 

'08.10.   : 러먼 브라더스 파산. 국제금융위기 발발

'09. 7.20 : 도시개발구역지정 및 개발계획수립 공람공고(14일간)

'09.10.   : 1차 사업협약 변경

'10. 4.20 : 광역교통개선대책 수립 (국토해양부 승인)

'10. 4.22 : 도시개발구역지정 및 개발계획수립 고시

'10. 8.31 : 삼성물산 경영권 포기 선언

'10.10.   : 롯데관광개발 경영권(지분)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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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탄하게 잘 나가는 듯 했던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그러나, 2008년으로 접어 들어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많은 암초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서부이촌동 통합개발에 따른 일부 주민 반대, 수용을 위한 근거법의 미비, 특히나 2008년 10월, 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인한 국제금융위기 발발로 커다란 먹구름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 전까지 전 세계의 부동산시장이 폭발적인 상승세를 이어 오던 부작용으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발하게 되고, 이 때 부터 국제금융위기의 발발은 사실상 예약이 되어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 우려는 기어코 현실로 닥치게 되었던 것 이지요.

 

먹구름이 잔뜩 끼긴 하였지만 아직 우리나라에까지 폭우가 쏟아지기에는 부족했던 듯, 이 후로도 대한민국, 특히 수도권 일대의 부동산시장은 오히려 1년 이상 더 활황세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이 사이,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대한 도시개발구역지정이 2009년 7월에 공람되고 2010년 4월 22일에 구역지정이 됩니다.

 

2007년 초기 출범과정이 매우 극적이면서 신속 했기에, 상대적으로, 드림허브 설립 이후 2년 4개월여 만에야 구역지정이 이루어진 것은 그 길어진 기간만으로도 충분히 험난한 여정이었으리라 유추해 볼 수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험난한 정도가 아니라 위태하기까지 한 복병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2008년의 국제금융위기로 드리워지기 시작했던 먹구름은 당장은 국내에 큰 여파를 미치지는 않았지만, 이 후  점차 짙어져 가던 먹구름은 마침내 굵은 빗방울을 떨구기 시작하여서, 2010년 부터는 국내 부동산시장도 빠르게 경색되어 가면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로 길을 들어섭니다.

 

이 과정 중에 있던 출범초기의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많은 내홍을 겪게 되며  그 항해의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 들게 되었는데 초기에는 이러한 일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는 대신 마스터플랜의 선정이나 구역지정과 같은 호재성 뉴스들이 더 부각되고 있었습니다.

 

환상에 의한 높은 기대감이 현실을 가렸다고나 할까요?

 

 

 

용산 국제업무지구 마스터플랜의 선정

 

"2008년 7월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의 5개 회사가 4개월 동안 마스터 플랜을 계획하여, 2008년 11월 제안발표를 하였고, 2009년 3월 심사를 통해 SDL의 마스터 플랜을 선정하였습니다."

 

...는 기사들이 언론 지면에 등장했습니다.

 

 

09mastplan.jpg

 

 

흔히들 알고 계시는, 많이 보아 오던 조감도가 아닐 겁니다.

 

이 때 선정된 마스터 플랜에 의해 탄생한 '트리플 원' 을 메인으로 하는 완성형 마스터플랜은 2012년 5월에 가서야 공개됩니다.

 

이 때에는 아직 마스터 플랜에 대한 준비과정과 선정 사실 정도만 간단하게 공개되었을 뿐 이었죠.

 

이렇게 표면적으로는 마스터플랜의 준비 소식이 알려지고 구역지정이 되는 등 사업이 순항하는 것 처럼 보였으나, 이 기간 수면 아래 상황은 점점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급기야는….

 

 

 

삼성물산의 퇴장

 

마스터플랜의 선정과 도시개발구역지정이 이루어지며 순항하는 듯이 보였던 국제업무지구는, 구역지정 4개월 후인 8월 31일 삼성물산의 경영권 포기 선언으로 극적인 국면전환 사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국제업무지구와 국제금융위기.

 

똑같이 '국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두 단어가 내포한 연관성이 적을 수가 없습니다.

 

국제금융위기는 비록 국내 부동산시장을 당장에 위축시키지는 않았으나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대해서 만큼은 즉각적인 타격을 입히게 됩니다.

 

사업 초기에만 해도 용산 국제업무지구 사업을 낙관적으로 보고 이 곳에 들어설 빌딩에 대한 구매 의사를 타진해 오던 글로벌 기업들이 '국제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발을 빼거나 빌딩 매각 가능금액이 기대치를 밑돌면서 수익성에 빨간 불이 켜지게 되었던 것 입니다.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자 사업비 마련을 둘러싼 30여개에 육박하는 투자자 간 이견이 생기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마스터플랜이 선정되고 구역지정이 이루어진 2010년 4월쯤에는 이 내홍이 균열된 틈을 타고 표면으로 불거져 나올 정도로 심각해져 있었던 것 입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가 삼성물산-국민연금 컨소시엄을 사업자로 선정할 당시의 사업비 규모는 28조원 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국제금융위기 이후 2009년을 지나가며 30조원 얘기가 슬그머니 흘러 나오며 밑밥이 깔리기 시작하더니 2010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어느덧 31조원으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총 사업비 31조원의 '단군이래 최대 개발사업'의 기원입니다.

 

일로 사업성이 악화되어 가던 당시의 상황과 사업비용 증가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표면적인 순항과는 달리 이러한 내부적인 갈등들이 더 이상 수면아래 머물러 있지 못하게 되고 표면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하면서, 급기야는 2010년 8월, 삼성물산 주도하에 토지중도금에 대한 지불 연기와 용적률 상향에 대한 요구가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이는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한 '특혜시비 논란'으로 이어지며 혼란이 가중되어 가던 중, 삼성이 빠지면 랜드마크 빌딩을 4조원에 매입하겠다는 코레일의 폭탄선언이 터져 나옵니다.

 

결국, 8월 31일에 삼성물산은 경영권 포기를 선언하며 발을 빼고, 10월에는 롯데관광개발이 경영권을 인수하며 혼란했던 국면은 일단 마무리가 됩니다.

 

이렇게 선장을 바꾸면서 '용산 국제업무지구 호'의 항해는 한차례 내홍을 견디어 내고 다시 출항을 이어갈 준비를 마친 듯이 보입니다만….

 

이 후의 사건들은 다음 장,  용산 국제업무지구 ③ 대 항해기2, 격변과 난파, 재출항에서 이어집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① 연혁

용산 국제업무지구 ② 대 항해기1, 처녀출항과 좌초(이번 글)

용산 국제업무지구 ③ 대 항해기2, 격변과 난파, 재출항

용산 국제업무지구 ④ 면적과 금액 등 기초자료

용산 국제업무지구 ⑤ 2006 부동산시장

용산 국제업무지구 ⑥ 부동산시장에 대한 후폭풍

용산 국제업무지구 ⑦ 과거의 거래양싱 및 원인 분석

용산 국제업무지구 ⑧ 1차 항해 실패의 원인

용산 국제업무지구 ⑨ 국제업무지구라는 환상

용산 국제업무지구 ⑩ 2020 정비창부지 개발계획

 


 

※ 당부말씀

 

본 컨텐츠에서 자료를 인용해 가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표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컨텐츠는 현재에는 검색이 용이하지 않은 수많은 오래 전의 단편적인 자료들을 분석하고 재구성한 뒤 고증과정을 거쳐서 작성된 것 입니다. 따라서 본 컨텐츠의 상세한 내용은 일반적으로 검색 및 수집이 가능한 단편적인 자료들과는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 많은 차이가 있어서 본 컨텐츠의 무단 도용 사실을 숨기기는 어려울 것 입니다.

 

본 컨텐츠의 작성에 들인 노력과 시간은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정도를 한참 상회하는 정도일 것 입니다. 결코 무단도용하는 일 없이 출처표기를 반드시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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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용산 국제업무지구 ⑩ 2020 정비창부지 개발계획

    이 글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 입니다. 5.6일 갑작스런 부동산공급대책 발표. 또한 거기에 갑작스레 포함되어 튀어 나온 정비창부지 개발 계획. 이 발표 직후 청파동 꼬마빌딩 경매 소식이 대서특필되는가 하면, 뒤이어 쏟아져 나온 각종 소란스러운 이야기들......
    등록일2020.06.05 조회수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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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용산 국제업무지구 ⑨ 국제업무지구라는 환상

    이번 장에서는 '용산 국제업무지구'가 탄생하여 우리의 뇌리 속에 현재와 같은 환상으로 각인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소 의아해 하실 지 모르겠으나 최초의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모습이 아...
    등록일2020.05.29 조회수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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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용산 국제업무지구 ⑧ 1차 항해 실패의 원인

    코레일의 과욕 2006.12.20일 '용산역세권개발 사업자 공모'에는 코레일의 과도한 욕심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토지는 토지대로 팔고, 사업에는 29%의 지분으로 참여하되 코레일이 대주주가 되어야 하고(언제든지 간섭할 수 있도록), 사업참여자가 임대...
    등록일2020.05.27 조회수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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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용산 국제업무지구 ⑦ 과거의 거래 양상 및 원인 분석

    이전 글, '용산 국제업무지구 ⑤ 2006 부동산시장'과 '용산 국제업무지구 ⑥ 부동산시장에 대한 후폭풍'에서 정리했던 부동산시장 과열양상의 원인들을 분석한 글 입니다. 2006년을 기점으로 폭발했던 부동산시장과 2016년부터 5년간 급등세가 ...
    등록일2020.05.25 조회수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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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용산 국제업무지구 ⑥ 부동산시장에 대한 후폭풍

    '용산 국제업무지구 ⑤ 2006 부동산시장' 에 이어지는 글 입니다. 2006년 판교발 2차 후폭풍은, 4차 뉴타운 열풍이나 은평 뉴타운의 높은 분양가 등의 다른 불 쏘시개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부동산과열 양상이 벌어지게 만든 주 요인 중 하나가 되었지...
    등록일2020.05.23 조회수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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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용산 국제업무지구 ⑤ 2006 부동산시장

    이 장에 소개되는 내용은, 다음에 이어질 '용산 국제업무지구 ⑥ 부동산시장에 대한 후폭풍' 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것 입니다. 15년전 쯤, 부동산 투자열기가 정점에 이른 시점은 2006년입니다. 물론 그 이후 3년 동안 국지적인 투자열기가 멈...
    등록일2020.05.23 조회수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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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용산 국제업무지구 ④ 면적과 금액 등 기초자료

    현재에 인터넷을 통하여 떠돌고 있는 정비창부지나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면적만 수 십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당연히 몇 개를 빼고는 죄다 엉터리이겠지요. 수많은 보도들에 인용된 면적을 아무런 의심없이 그대로 차용하는 일이 되풀이 되면서 실수에 의해 왜...
    등록일2020.05.21 조회수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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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용산 국제업무지구 ③ 대 항해기2, 격변과 난파, 재출항

    이전 글, 용산 국제업무지구 ② 대 항해기1, 처녀출항과 좌초 에 이은 사건들을 소개하는 장으로 이전 글의 내용을 모르면 사건의 연계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3기 : 격동기 (2010.10 ~ 2012.8 ; 약 2년간) '10.12. : 2차 사업...
    등록일2020.05.20 조회수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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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용산 국제업무지구 ② 대 항해기1, 처녀출항과 좌초

    이번 장에서는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태동부터 1차 사업의 무산, 그리고 재 출범까지의 기나긴 발자취를 소개하겠습니다. 개별적인 사건이나 항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가급적 생략한 채 중요한 사건 위주로만 전개할 예정이며, 상세한 내용을 살펴...
    등록일2020.05.20 조회수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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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용산 국제업무지구 ① 연혁

    이 장에서는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연혁을 소개합니다...만? 이런 류의 연혁을 꼼꼼히 읽어 보시는 분들은 드물겠지요? ^^ 사실, 이 번 장에 소개하는 연혁은, 다음에 펼쳐질 '용산 국제업무지구'라는 한 편의 서사시(?)의 기초 자료로 사용할 목적으로...
    등록일2020.05.20 조회수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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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용산 국제업무지구. 프롤로그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사업' '총 사업비 31조원' 2007년 서울시와의 통합개발이 결정되면서 선을 보인 위의 조감도는 많은 이들을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천지개벽' 과도 같았던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그러나, 수많은 좌절...
    등록일2020.05.20 조회수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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